[우분투칼럼] 헤이그 문턱 못 넘던 韓, '홍익-우분투'로 AI 아프리카 이끌자
박기태 반크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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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반크 단장 [박기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는 국제 정의를 향한 인류의 열망을 담은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대한제국의 세 특사, 이상설·이준·이위종은 차가운 현실에 맞닥뜨렸다. 제국주의 열강의 냉혹한 벽 앞에서 그들은 나라 잃은 약소국의 비애를 온몸으로 감내했다. 그들은 회의장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는 주권을 유린당한 한 민족의 슬픈 역사이자, 국제 질서의 불평등을 여실히 보여주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좌절은 우리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20여년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무대에서 경이로운 전환을 이뤄내며 빛나는 위상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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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헤이그 특사 3인 부조 제막식 이준 열사 기념관서 거행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고종황제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한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의 모습을 새긴 부조 작품 제막식이 2013년 8월 28일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거행됐다. 당시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오른쪽)과 송창주 이준 열사 기념관장이 부조 작품을 제막하고 있다. photo@yna.co.kr
2025년 11월 23일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28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선정된 것이다. 과거 헤이그 회의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던 그 나라가, 이제는 세계 경제의 핵심 논의를 주도하고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를 설계하는 글로벌 리더의 자리에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는 비단 형식적인 의장국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어 2028년 G20 의장직까지 맡게 됐다.
이에 따라 국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설계자'이자 책임 있는 '리더'로서 면모를 확고히 하게 됐다. 특히 2028년은 G20 출범 20주년이 되는 해다. 복합적 국제 현안에 직면한 이 중대한 시점에, 한국이 인류 공동의 문제 해결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전 세계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는 대한민국이 과거의 피동적인 역사를 딛고, 글로벌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능동적인 국가로 성장했음을 천명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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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G20 정상 기념촬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G20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yz@yna.co.kr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어떠한가. 세계사의 변곡점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우리 국민들은 과연 80억 지구촌을 포용할 리더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필자는 우리가 80억 지구촌의 미래를 이끌어갈 진정한 '지구촌 촌장 국가'가 되기 위해서, 우리 민족의 건국 정신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숭고한 정신과 아프리카 반투어족의 지혜가 담긴 우분투(Ubuntu) 정신, 곧 "I am because we are."(나는 우리가 있기에 존재한다)를 결합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은 한 국가를 넘어 전 인류의 번영을 지향한다. 아프리카 '우분투'는 단순한 상호 의존성을 넘어 공동체의 조화와 연대를 통해 개인의 존재 가치가 실현됨을 보여준다. 이 두 위대한 정신은 놀랍도록 비슷하고,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인공지능(AI) 시대의 거대한 과제와 무한한 기회 속에서, 대한민국의 홍익인간 정신과 아프리카 우분투 정신의 결합은 더욱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한때 제국주의 희생양이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를 설계하는 자리에 섰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과 AI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와 상생의 정신을 실현하는 가장 의미 있는 행보가 될 것이다.
최근 G20은 'AI 포 아프리카'(AI for Africa) 이니셔티브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 AI의 혁신을 책임감 있고 포용적으로 활용하여 개발 성과를 가속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AI 기술이 특정 지역이나 소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인류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다. AI가 가져올 막대한 잠재력만큼이나, 정보 불균형, 기술 격차, 그리고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편견과 차별의 위험 또한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한 AI 기술 적용은 선의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자칫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적 관계나 디지털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과 중국에 이은 AI 3대 강국, 아시아 AI 수도를 국가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는 대한민국과 G20의 'AI for Africa' 이니셔티브가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접점을 발견한다.
◇AI 시대 '우분투 홍익인간 디지털 대사'의 역할: 기술과 윤리의 조화
G20 'AI for Africa' 이니셔티브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아프리카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책임 있는 AI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목표 달성에 실질적인 기여를 넘어,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첫째 'AI 우분투 홍익인간 디지털 대사'의 공동 육성이다. AI 리터러시(문해력) 및 활용 심화 교육을 이수한 한국과 아프리카 청년들은 단순한 AI 사용자 수준을 넘어, AI 기반 콘텐츠를 생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 예를 들어 AI 기반 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해 아프리카 현지의 '농업 생산성 향상', '보건 의료 접근성 개선' 등 특정 개발 문제를 진단할 수 있다. 또 이를 해결할 창의적인 AI 솔루션 아이디어를 도출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이밖에 AI가 생성하는 허위 정보(딥페이크 등)를 식별하고 대응하는 '디지털 외교 실습'을 통해 AI 시대의 정보 무결성(정확하고 다양한 정보 기반의 합리적 선택 상태)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는 AI 기술 활용 능력과 함께, 기술의 윤리적 사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겸비한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둘째 AI 시대의 '아프리카 바로 알리기' 캠페인의 세계적인 확장이다. AI 모델 학습 데이터에 내재한 아프리카 관련 편향과 왜곡된 서술은 심각한 문제다. 인종차별적 편견, 빈곤이나 분쟁에만 초점을 맞춘 이미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정보 등은 AI가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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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아프리카 바로 알기 교과서 시정 캠페인' [반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반크는 한국 청년들의 초중고교 교과서에 아프리카에 대한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정보를 통해 생성되는 편견을 시정하는 활동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한국 교과서 서술이 개선되는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제 한국 청년들이 주도한 이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아프리카 청년들이 전 세계 초중고 세계사 교과서, 백과사전에 서술된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 왜곡을 시정하고 아프리카를 바르게 알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아프리카 실제 크기가 왜곡되었음에도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제작된 세계지도를 바로잡고, 아프리카를 질병 발생의 중심 지역으로 낙인찍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부정적 명칭 변경을 촉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AI 학습 데이터 내의 편향성을 식별하고 시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 전문가, 현지 공동체와 협력해 편향되지 않고 다각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고품질 아프리카 역사·문화·지명·문명 정보를 기반으로 데이터 세트를 구축하고, 이를 글로벌 AI 플랫폼 회사와 개발자 커뮤니티에 제안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이는 AI가 아프리카에 대한 공정하고 정확한 이미지를 생성하고 확산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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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아프리카돼지열병 명칭 변경 캠페인 [반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셋째, 한국이 주도하여 아프리카 청년들의 목소리를 AI 시대의 글로벌 정책 논의로 연결하는 것이다. 한국과 아프리카 청년들이 AI 기반 협업 도구를 활용하여 아프리카의 개발 의제(SDGs)에 기여할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를 G20 회원국의 투자자와 파트너에게 제안하는 'AI 포 우분투'(AI for Ubuntu) 챌린지를 공동 개최할 수 있다. 이는 아프리카 현장의 필요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AI 솔루션을 발굴하고, 청년들에게 글로벌 무대에서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장이 될 것이다. 또 한국이 개최하는 국제 포럼을 G20 공식 연계 행사로 격상시켜, 아프리카 청년들의 디지털 외교 경험과 정책 제안을 G20 차원의 AI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에 직접 반영하도록 할 수 있다. 이는 AI 정책 결정 과정에 아프리카의 고유한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다층적인 관점을 도입하는 데 필수적이다.
◇진정한 동반 성장을 위한 AI 협력: 홍익인간과 우분투 정신으로 가는 길
AI 시대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소외를 야기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기술 발전의 혜택이 특정 국가나 기업에만 집중될 경우 글로벌 차원의 디지털 격차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그러나 G20의 'AI for Africa' 이니셔티브와 '홍익인간-우분투' 정신이 결합한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도전을 기회로 바꾸고, AI 기술이 모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과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우분투 정신처럼, AI 시대의 진정한 동반 성장은 아프리카와 전 세계가 함께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서로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2028년 G20 의장국인 대한민국은 이 숭고한 미래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이미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글로벌 우분투 청년 홍보대사' 육성과 '아프리카 인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대륙의 잠재력과 다양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한국과 아프리카 청년들이 우분투 정신으로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왔다. 이는 단순한 일방적 지원이 아닌,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동반 성장을 지향해 온 한국의 외교 방향과도 일치한다.
과거 헤이그 특사의 비극을 딛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우뚝 성장한 한국이, 아프리카의 무한한 잠재력과 한국의 혁신적인 AI 역량, 그리고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이 만나 AI 시대의 새로운 '홍익인간-우분투 문명'을 열어갈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인류 공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위대한 여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80억 지구촌 공동체의 마음을 잇는 희망의 등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홍익인간 정신과 우분투 정신을 양손에 들고, AI 시대의 세계를 함께 이끌어갈 진정한 글로벌 리더이자 지구촌의 촌장이 될 것이다. 2028년, 한국이 주도하는 G20이 그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기태 단장
현 반크 단장, 경기도 인공지능위원회 위원, 재외동포청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정책실무위원, 직지 홍보대사 활동 중, 외교부·대검찰청 정책자문위원, 청와대 청년위원회 위원,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KOICA 홍보전문위원, 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홍보대사, 서울시 홍보대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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