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JP '자의반·타의반' 저주에 헤매는 국정원…"문제는 내부다"
정보부 창설 김종필 "정권 잡으면 정보 장악"…내부 견제로 실각

김형욱 소각, 김재규 처형, 권영해 할복, 원세훈 중형… 60년 악순환

계엄 연루 의혹 조태용 끝내 구속, "자의반, 타의반 심정이었을 것"

'음지 양지' 거창한 구호 접고 국정원 직원들 스스로 거듭나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98년 3월 21일 새벽, '북풍 공작' 혐의로 서초동 서울지검에서 밤샘 조사를 받던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조사실 내 화장실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성경책 속에 숨겨둔 커터칼로 복부를 세 차례 그었고, 동맥까지 손상돼 위중했지만 지척에 있던 성모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 숨가빴던 새벽의 소동은 정보기관장이 결국 어떤 운명과 마주하게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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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만년 2인자 김종필 (서울=연합뉴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컵(박스컵) 아시아 축구대회 선수입장식에서 박수를 보내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권력을 떠받치던 사람이 새 권력에 의해 무너지는 구조를 설계한 인물은 김종필(JP)이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처삼촌 박정희 소장과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JP는 "정권을 잡았으면 정보를 장악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스스로 초대 부장에 올랐다.

JP가 만든 중정은 미국 CIA를 본뜬 조직이었지만 해외 정보 수집보다 국내 사찰과 정치 공작에 집중했다. '반공'을 명분 삼아 검찰과 경찰 지휘권까지 틀어쥐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초법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힘은 창설자에게 되돌아왔다. JP가 정권 1인자처럼 군림한다는 내부 견제가 커지자 박정희는 '4대 의혹 사건'을 빌미로 그를 내치고 외유를 떠나게 했다.

이때 JP가 남긴 말이 바로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박정희는 "고난 뒤에는 기막힌 향기가 난다"고 위로했지만, JP가 마주한 현실은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 자리가 아니라, 늘 감시받고 불안에 떠는 '2인자'라는 꼬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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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기소된 장세동 전 안기부장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용팔이 사건으로 첫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하사헌/1993.4.26(서울=연합뉴스)

JP에서 시작된 악순환은 60년 넘게 진행형이다. 김형욱은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다 파리 외곽의 소각로에 넣어져 사라졌고, 그 김형욱을 제거한 김재규는 경질 위기에 몰리자 평생 은인이던 박정희를 쏴죽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김영삼 정부의 권영해, 김대중 정부의 신건·임동원,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박근혜 정부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문재인 정부의 서훈·박지원까지 정보기관 수장은 기소와 구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조태용 전 원장이 구속되며 정보기관장의 말로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통 외교관 출신인 그는 후진국에서도 없는 야당과 정적을 겨냥한 계엄 발동이 부당함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손과 발이기에 그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추락은 "자의반, 타의반"이라 했던 JP의 운명과 묘하게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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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2025.9.26 [헌법재판소 제공] 2025.2.20

이쯤 되면 정보기관장의 역사는 국가안보의 역사라기보다 구속의 '계보'에 가깝다. JP가 만든 저주를 풀 해법은 간단하다. 국정원 스스로 국민의 눈과 귀로 거듭나려는 노력이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통제는 '음지에서 양지로' 같은 거창한 구호를 바꾼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싹 잡아들여 정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단호히 거부한 홍장원 같은 인물이 국정원에서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박정희의 표현대로 고난 뒤에 기막힌 향기를 발산할 수 있을 것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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