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국적 초월해 '세계 입양인 연대 네트워크' 만들 때"
'2025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 참가 이재동 프랑스 한국뿌리협회장

"뿌리 찾기, 존재 의미 확인하는 치유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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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프랑스명 로홍 뒤물랭) 프랑스 한국뿌리협회장 (인천=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이재동(프랑스명 로홍 뒤물랭) 프랑스 한국뿌리협회장이 1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 11. 13. phyeonsoo@yna.co.kr

(인천=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우리는 프랑스인이자 한국인입니다. 이 두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품고, 다음 세대가 그 가치를 자랑스럽게 이어가길 바랍니다."

재외동포청(청장 김경협)이 주최한 '2025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 참석차 모국을 찾은 이재동(프랑스명 로홍 뒤물랭·43) 프랑스 한국뿌리협회장은 1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웹디자이너이자 그래픽 전문가인 그는 침체된 협회를 되살려 입양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되찾고, 한국과 프랑스 간 문화 교류의 새 장을 열고 있다.

한국뿌리협회는 1995년 설립된 프랑스 최초의 한국 입양인 단체다. 프랑스에는 약 1만2천 명의 한국 입양인이 거주하며, 이는 유럽 최대 규모다. 협회는 재외동포청, 아동권리보장원 등과 손잡고 입양인 귀국 지원, F-4(재외동포) 비자 안내, 한국어 교육, 가족 찾기 등을 통해 입양인들이 한국 문화를 접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가교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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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들의 고향 '엄마품동산' 찾은 이재동 회장 (파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이재동 한국뿌리협회장이 지난 11일 경기 파주 조리읍에 있는 입양인들의 치유 공간이자 고향인 '엄마품동산'을 찾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 11. 11. phyeonsoo@yna.co.kr

이 회장은 "회원의 10~15% 정도가 한국의 친가족을 찾았다"며 "이는 단순한 재회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치유의 여정"이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2019년 아동권리보장원(NCRC)과 프랑스 외교부의 도움으로 친부모와 세 이복형제자매를 만났다. "복잡한 가족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땅에서 가족을 다시 만난 순간 모든 것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협회 활동이 거의 멈춘 상태에서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젊은 세대의 참여 부족으로 협회가 위기에 처했었다"며 "새로운 프로젝트로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전공을 살려 홈페이지 개편, 홍보물 디자인, SNS 콘텐츠 제작 등 모든 시각 콘텐츠를 직접 손봤다. "예전엔 흑백 안내문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전문적인 이미지로 신뢰를 얻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봤다. 협회는 온라인 한국어 강의, 합창단 창설, 김밥 아틀리에 등 한식 체험 프로그램, 추석·설날 행사, 월례 점심 모임, 한국 대사관·한글학교·여성회·유학생회와의 공동 행사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다시 활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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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한인여성회와 한복 체험 행사 (서울=연합뉴스) 재불한인여성회와 한복 체험 행사를 가진 이재동(왼쪽 첫 번째) 회장.[한국뿌리협회 제공]

프랑스 전역(파리·툴루즈·보르도·노르망디)으로 네트워크를 넓혔고, 지난 5월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는 400여 명이 참석해 큰 성공을 거뒀다.

화가로도 활동하는 이 회장은 입양인 예술가 모임을 새롭게 꾸리고 있다. 회화, 사진,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입양인 예술가들이 모여 정체성을 예술로 표현하는 연례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그는 "입양인은 본질적으로 두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라며 "그 복합적인 감정을 예술로 풀어내면 우리만의 언어가 된다. 전시를 통해 입양인의 내면을 사회와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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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뿌리협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포스터 [한국뿌리협회 제공]

이 회장은 내년 10월 19일부터 24일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 Gathering 2026' 준비에도 한창이다. 약 600명의 입양인이 참여할 이 행사는 입양인들이 모국의 현재를 체험하고 뿌리를 찾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는 "재외동포청이 주관하는 '글로벌 차세대 서밋(GFGS)' 1기 위원으로 활동하며 입양인 청년들이 한국에서 학업과 창업 기회를 얻도록 정책적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입양인 차세대는 과거만 찾는 세대가 아니다. 한국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글로벌 세대"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활동은 프랑스에서도 주목받는다. 프랑스 외교부의 국제입양 미션과 협력해 입양 절차 투명성, 기록 보존, 가족 재회 지원 등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또 한국문화원, 대사관, 한글학교 등과 연말 행사를 공동 주최하며 한국과 프랑스 간 문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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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뿌리협회 창립 30주년 기념 출판물 표지 (서울=연합뉴스) 한국뿌리협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펴낸 출판물 'HAMKAE'(함께) 표지. 함께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문화적 다리를 놓자는 의미의 표제가 인상적이다. [한국뿌리협회 제공]

"우리는 단순한 입양인이 아닙니다.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문화적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정체성의 혼합은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은 프랑스 내 모든 입양인을 아우르는 통합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국적과 출신을 초월해 입양인들이 정체성, 가족, 사회적 연대를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는 한인 입양인이자 세계 입양인의 일원"이라며 "이제는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세계 입양인 연대 네트워크'를 만들 때"라고 포부를 밝혔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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