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60부터.”
한때 텔레비전 광고 속 이 한마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주문처럼 들렸다. 마치 60세가 새로운 출발점이고, 그 이후의 삶은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라 믿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말은 듣기에는 멋지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에게 허무한 위로에 불과하다.

60이 되면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걸음은 느려지고, 집중력은 떨어지며,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쉬어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쉰다는 것이 곧 평화는 아니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퇴장’을 의미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세상과 멀어지고 있음을 절감한다.

오랜 세월 한 조직의 중심에서 책임을 맡고, 이름이 불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전직자’로 불릴 때, 그의 존재감은 서서히 희미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고, 함께하던 동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분주하다. 그때 느껴지는 공허함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물론 60 이후의 삶에도 분명 좋은 점은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삶의 기준을 남이 아닌 자신에게 맞출 수 있다. 하고 싶은 취미를 배우고, 여행을 다니며, 때로는 손주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곧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경제적 제약, 건강의 한계, 사회적 관계의 축소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가온다.

진짜 문제는 육체의 노쇠가 아니라, 의미의 상실이다.
그동안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로 존재하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무기력은 서서히 사람을 잠식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희망이 있다. 인생의 무게 중심을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서 ‘자신이 선택한 의미’로 옮길 때, 60대의 삶은 비로소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누군가를 돕는 봉사, 글쓰기나 음악 같은 창작, 지역사회 활동 등은 새로운 의미의 터전을 만들어 준다. 세상이 나를 불러주지 않아도, 내가 세상에 말을 걸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진짜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생은 60부터.”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시작’이란 젊음의 재도전이 아니라, 의미를 다시 쓰는 용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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